이제 계절의 흐름에 따라 대부분의 국립공원 산들은 12월 15일까지 가을철 산불방지기간에 들어 갔다.
그리하여 이번 산행은 백두대간의 그 어느 코스를 가기로 한다.
물론 백두대간을 큰 계획에 따라 가는건 아니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코스를 선택한다.
이번에 선택한 코스는 우두령에서 부항령까지...
뭐 여느 사람들은 11시간 정도로 하루에 끝내는 코스지만 나는 룰룰랄라 여유있게 1박 2일로 잡는다.
계획은 우두령에서 출발해서 삼막골재 부근에서 하늘의 별을 보며 잠들고 삼도봉에 올랐다가 부항령에서 마치는거다.
부산에 사는 후배와 부항령에서 만나 차 한대를 주차해 놓고 우두령으로 오면서 바라 본 하늘은....이건 아니올씨다다.
안재자욱한 날씨에 비까지 흩날리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후배 왈...이거 어디 산행하겠습니까...헤...역시나다.
그래...일단 아침을 먹고 보자.
지례의 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 사이에 안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란듯이 하늘이 열린다.
그리하여 굽이굽이 산 허리를 돌아 한참을 달려 드디어 우두령에 도착한다.
그런데....우쒸.
날씨가 다시 변덕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던 안개가 메롱하고 다시 나타난다...허걱.
순간 주변은 자욱한 안개로 전설의 고향을 연출하며 적막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후배들아....발길을 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느니라...
이제 서로의 배낭을 정리한다.
불량체력 후배에게는 달랑 침낭두개만 준다...그래도 무겁다고...투덜투덜...
그리고 다른 후배와 나는 서로 누구 배낭이 더 무겁다느니...
배낭의 모양이 안 나온다느니...
그렇게 전설의 고향으로 들어 가기전에 즐거운 마음으로 배낭을 정리하고 11시 50분쯤에 이제 안개속으로 본격적으로 산행시작이다.
우두령에 있는 거리표시.
삼도봉까지 십여키로....뭐 대략 5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지.
요건 어디까지나 생각이다...
불량체력을 감안하면 아마도 빨라야 6시간을 잡아야할 것 같다.
오늘은 현위치에서 삼도봉을 거쳐 부항령까지 가지만 다음 어느날에는 그 반대편인 황악산 방향으로 가리라...
우두령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듯 하다.
그래서일까 불현듯 드라이브코스로 딱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이브....에에....어느날 누구와.
우두령에서 부터 계속 오르막길이다...당연하겠지만.
그러고 자욱한 안개로 인해 조망과 경치 구경은 이미 물건너 간지 옛날이다.
그리고 안개가 자욱하다 못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드디어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한다.
물기를 머금은 나무들은 마치 막 목욕을 마친것처럼 그 모습이 촉촉하고 싱그럽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맺힌 물방울은 영롱하게 빛난다.
안재자욱한 길을 걷는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사방은 온통 희뿌연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가끔씩 바람의 흐름에 따라 안개가 사라지면
잠시나마 부끄러운듯 목욕을 마치고 미쳐 물기를 닦지 않은 수줍은 여인의 하얀 속살을 보여 줄 뿐이다.
금방 도착할것 같던 석교산은 가도 가도 나오질 않는다.
투덜이 1,2는 계속 투덜투덜대는 중이다.
왜 안 쉬느냐고, 천천히 가자고...등등.
그러는 사이에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새벽 3시에 출발했다는 안내산악회인듯한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우리를 스쳐 지난간다.
새벽에 출발했으면 밤에는 캄캄해서 아무것도 못 보왔을테고 지금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고...
음.......발 그대로 그냥 등산만 하다가 가는건데....아쉽겠다.
정말이지 자욱한 안개바다다.
분명 저 앞에 어딘가에 석교산이 있을텐데 산은 커녕 바로 앞의 능선도 안 보인다...개뿔.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마음으로는 모든것이 보인다.
그렇게 안개바다속을 한참을 걸으니 2시 30분 경에 불쑥 오늘의 첫 목적지인 석교산이 나타난다.
반갑다...반가워.
허걱...너무 띵까띵까 여유있는 산행을 했나 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네.
그래도 후배들은 이런 농담 저런 얘기를 하면서 만사 태평이다.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즐겁게 웃는다.
날씨도 이렇고 한데 오늘은 그냥 가는데 까지 가다가 아무데서나 텐트를 치자느니...
뭐...암튼...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안다...
후배들의 마음을...
절대로 앞을 볼 수 없기에 가끔씩 지도를 보면서 "어디만큼 왔나" 을 점검을 해 보지만 이건 뭐 앞이 보여야
"여기는 어디쯤이고 저기는 어디고 이제 얼마 남았네 " 을 하지...썩을.
암튼 무슨 다래덩쿨인지 무슨 덩쿨은 왜그리 많은지.
아마 한 여름에 반팔로 다니다가는 팔 전체가 상처투성이가 될 듯 싶다.
아뿔싸.
예고도 없이 경고도 없이 순식간에 나의 다리에 쥐가 나타난다......엥...뭐니 이건.
허걱....이제 시작이고 아직 갈 길은 한참이나 남았는데...나는 어떻하라구.
순간 아무생각 없이 그냥 진흙 바닥에 드러눕고 싶다.
그러나 정신차리자.
아픈 다리를 참으며 마음을 진정하니 바로 신통하게도 다리가 거의 정상 수준으로 돌아온다...오잉
비록 이제 겨우 두달밖에 안 다녔지만 요가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나만의 위로를 한다.
걱정했던 다리는 그 이후로는 아무런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다...착하다 착해.
오늘은 사라지기를 거부한 아니 아예 생각도 안 하는 안개속을 걸으며 밀목재에 도착하니 벌써 4시50분이다.
날은 이미 슬슬 어두워 질 준비를 마치고 있다.
아아...이렇게 해서 오늘의 목적지인 삼도봉 밑에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뭐...그래도 언제나 그렇듯 나도 후배들도 큰 적정은 안 한다.
뭐...어두워지면 그냥 그 자리에 텐트를 치지 뭐...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으면 걷고있는 사이에 시간은 어둠을 내려 놓고 있었다.
아직은 짙은 어둠은 아니라 그냥 어둠속을 걷는다.
후배 한명은 먼저 가면서 이제는 발등의 불인 텐트 칠 장소를 물색중이다.
다른 투덜이의 얼굴에는 "에고에고 나 죽겠네" 라고 써 있다.
그렇지만 무거운 발걸음을 참으며 묵묵히 잘 걷고 있다.
짙은 어둠이 미명을 삼켜 버리기전에 후배가 삼도봉을 조금 못 미친 지점에 텐트 칠 장소를 발견한다.
5시 50분에 서둘러 텐트를 치고 불량체력은 텐트속으로 보낸다.
고생했다.....일단 누워서 쉬고 있어라.
우선 따뜻하게 라면 끓여 주고 밥 하고 고기 굽고.....이제 다 같이 맛있게 먹자.
별이 없는 밤하늘아래 이슬의 밤이 깊어 간다.
오늘은 밤하늘에 별이 없다...그런데 밤하늘 가득한 별을...어쩌구저쩌구...마음이라니.
마음 같아서는 저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을 날아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가득 따오고 싶다.
지구의 모래알보다 많다는 하늘의 별.
그 별을 모두 다 따와서 뭐 하게.
줄 사람도 없으면서...
흠
텐트 밖에서는 장난아닌 바람소리가 사납게 들려 온다.
그래도 후배들은 "바람아 불고 싶으면 불어라" 하면서 나 몰라라 하며 잘도 자고 있다.
음...이건 뭐 경로우대가 아니라 경로학대 수준이다...
그래....피곤한데 더 자라.
생각보다 밖의 날씨가 그리 춥지는 않은데 바람은 무섭게 분다.
더 늦어지면 안될것 같아서 먼저 일어나 어제의 흔적을 대충 정리해 놓고 밥도 하고 라면을 끓여 놓고 후배들을 깨운다.
이제...일어나...일어나...라면 다 끓었다.
아침을 맛나게 먹고 텐트을 쳤던 흔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9시40분에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다.
바람은 모든것을 쓸어 버릴듯 점점 그 사나움을 더해가고 있다.
날씨를 너무 얏본 탓일까.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사정없이 부는 바람에 얼굴이 떨어져 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어제 배낭을 챙기면서 겨울 모자를 넣었다가 뺐는데....후회막심이다...그러게 잘 하지.
후배가 모자를 줘서 다행히 얼굴은 그 자리에 잘 붙어있다.
뒤에 살짝 보이는 불량체력 후배는 이곳에서 미리 택시를 부르고 해인리로 바로 하산이다.
항상 그렇듯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아마도 시내에서 사우나를 하고 오거나 그냥 차에서 기다릴듯...
삼막골재에서 후배를 보내면서 한장 찰칵.
겉으로 보기에는 안 그런척 하고 있지만 사실 무척 춥다.
얼굴을 빠알갛고 장갑을 벗은 손은 금방 시려 오고...
생각없이 마구 불어오는 바람과 싸우며 삼도봉을 오른다.
중간중간 바람의 위력에 잠시 발길을 멈추기도 한다.
삼도봉에 도착하니 바람과 싸워 이긴 사람들이 증거자료를 남기고 있다.
후배 왈....형 여기서 사진 찍은 적 있어요...
나....그래.
후배 왈...그럼 그냥 갑시다.
나....그래
그래서 우리는 그냥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부항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삼도봉을 지나 부는 바람을 몹시 미워하며 때로는 온 몸으로 이겨 내며 걷고 또 걷는다.
비록 바람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나의 몸을 비틀거리게 만들지만 하늘은 어제와는 완전 다른 세상을 보여 준다.
말 그대로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다.
마치 잔잔한 호수인듯 물한방울 떨어지면.........
삼도봉에서 바람을 맞으면 정신없이 한참을 내려 오니 잠시나마 바람이 잠잠해진다.
나름의 억새가 멋있는 곳에서 나름의 폼을 잡아 보지만 부는 바람에 영....
이제 올해의 가을도 가는 시간과 함께 또 다른 시간의 기억속에 추억으로 남게 되리라.
저 멀리 지나 온 능선을 배경으로...
누가 늦가을 아니랄까봐 보이는 모든 산들이 황량한 갈색이다.
올해도 이렇게 가을이 깊어 겨울이 다가 오는데...
황량한 건 보이는 산뿐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이 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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