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산행 휴식이 끝나고 이제 눈 덮인 겨울산을 그리며 산행을 계획한다.
나의 생각은 이른 폭설이 내린 강원도의 깊은 산 그 어딘가를 생각하다가
오대산과 마주보고 있는 동대산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부터 가 보고 싶었지만 그 때는 왠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산이다.
그러나...이런
부산의 후배가 너무 멀다며 지리산 어쩌구저쩌구 하더니 안 가본 만복대와 다름재 구간을 가자고 한다.
나는 그 먼 지리산을 자주 내려 가는데...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도 없고...팍..팍.
결국 마음착한 내가 백번 양보를 하고 지리산을 가기로 한다...그래..가자.
다른 산행기를 보니 눈은 별로 없는듯 한데 결코 믿음을 주지 못 하는 일기예보에서 전라도 지방에 대설주의보를 발령했다.
그래...이거다...눈이 대빵 많이 오기를 빌고 빌어 본다.
하지만 강풍이 분다고 하니 요게 제일 걱정이다.
그냥 기온이 낮은 건 얼마든 견딜 수 있는데 바람....이건 정말 너무 싫다.
암튼 일절은 그만 하고...
새벽 4시40분에 일어나 대충 철저히 씻고 밖에 나가보니 생각보다 바람도 없고 날씨도 그리 춥지는 않다.
하늘에서는 추위에 상관없이 별들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다.
나의 별은 이시간에는 꿈나라 여행을 하고 있겠지...악몽은 그만...
아직은 어둠이 내려앉은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예전에는 이렇게 혼자 어딘가를 떠날때는 왠지 모를 외로움과 허전함이 나의 옆자리에서 말없이 함께 하며 상념에 빠져들곤 했는데
이제는 혼자서 흥얼흥얼 콧노래도 부르며 스쳐 지나가는 모든것들에게 인사도 하고 즐겁다.
전주쯤 지날때 드디어 아직은 졸린듯 눈을 비비며 새벽이 눈을 뜨고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명이 밝음을 더해가면서 주변 산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어라....이게 뭐야...어제의 대설경보는 장난이였나...암튼 썩을.
온통 순백속에 잠들어 있어야 할 차창밖으로 보이는 들판과 산에 눈은 한개도 없다...뭐냐...이게
다만 저 멀리 능선의 정상부분만이 겨울산의 모습을 조금 보여 줄 뿐이다.
이번에는 내가 후배에게.....이러쿵저러쿵 궁시렁궁시렁.
이번 산행계획은 상위마을에서 출발해서 만복대에 오른 다음 다름재에서 엔골을 통해 월계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다.
월계마을에 차 한대을 놓고 상위마을에 도착하니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산행준비를 하고 있다.
음.....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는 길을 러셀을 하며 산행을 해야 하는거 아닌가...하고 생각을 했었는데...흠.
러셀은 개뿔 무슨 러셀
천천히 산행 준비을 하고 그네들이 먼저 오른 후 우리도 가벼운 마음으로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산행을 시작한다.
강풍도 없고 한파도 없고 눈도 없는 3무속에 이건 뭐 완전 띵까띵까다.
봄철이면 붉은 산수유와 관광인파로 가득했을 길을 따라 겨울산행 같지 않은 겨울산행을 한다.
등로에는 잔설도 없고 대신 늦가을 산행을 하는것 처럼 바스락바스락 낚엽을 밝으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리 그래도....설마 능선에 올라서면 눈은 있겠지.
시작부터 남자 둘이서 무슨 할 얘기가 뭐 그리도 많은지...
우리가 지금 산행을 하고 있는건지 산책을 나온건지...
걷다가 웃고 쉬면서 웃고 사진 찍으며 웃고.
좋잖아.
그렇게 쉼없이 떠들며 오르니깐 그냥 스쳐가는 어느 한사람이 하는 말...
두분이 참 즐겁게 산행을 하시네요...그렇게 등산하면 힘도 안 들고 좋겠네요...하신다.
하긴...눈도 없으니 등산시간을 걱정 필요도 없겠다 원래 우리 스타일이 조금 걷다가 피곤하면 쉬고
힘들면 또 쉬고 얘기 하면서 그냥 쉬고 뭐 대충 그런 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다른 안내 산행을 따라가면 완전 죽을맛이다.
그렇게 띵까띵까 걸어도 결코 늦은 걸음이 아니라서 어쩌다 보니 먼저 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함께 걷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자기 일행인줄 알고 말도 걸고 간식을 먹을때도 그냥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며 자기도 달라고 한다...허걱.
나 보다 조금 덜 착한 후배도 마음 착하게 간식을 건네 주면 하지만 일행은 아니라고 알려준다.
수간...급 당황해 하며 미안해 하신다...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헤헤
묘봉치에 도착해서 눈덮인 만복대의 경치를 바라보며 산행 시작할때의 아쉬움을 달래 본다.
말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설경속에서
표정 좋고 눈에서는 반짝반짝 빛나고...
만복대에 가까워 질수록 이제 제법 눈도 쌓여있고 해서인지 겨울산행 맛이 조금 난다.
후배는...이거봐요...눈 있잖아요...라며 큰소리치기 시작이다...알았다..알았어.
파아란 하늘아래 순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겨울의 지리산 만복대.
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같이 볼 수 있으면 더 좋았을텐데.
다음에는 꼭 같이 와야지.
체력을 길려야 할 텐데.
알지.
서북능선에서 바라 보는 지리산 주능선
오른쪽의 노고단과 살짝 구름에 가린 왼쪽의 반야봉.
맑은 내 눈에는 완전 한폭의 동양화다.....내 맘.
이걸 보고도 그런 느낌을 갖지 못한다면 이미 마음이 황폐한 사람이 분명하리라...
아...그림이 따로 없구나.
언제 보아도 나를 황홀경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런데 저 지리산 주능선에 올라본게 언제인지 모르게 아득한 느낌이 든다.
저 멀리 아득하게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이 눈에 들어 온다.
한겨울에 이렇게 맑은 하늘아래 서북능선에서 주봉을 볼 수 있다니 정말 감동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정말 멀기는 멀다...이제 알았나.
예전 2003년도인가.
인월의 덕두산에서 웅석봉까지 4박5일간 태극종주를 한적이 있다.
가도가도 끝이없는 길을 걷고 또 걷고...
참고 견디며 서로 도와가며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덧 그 멀게만 느껴지던 그 길의 끝에 발길이 닿고.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서 그랬는지 힘든것도 모르고 잘 걸어 다녔는데.
지금은.....영....예전 같지가 않아.
이 세상 그 무엇도 영원불멸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으니깐.
이네 인생도 언제가는 끝이 있겠지.
그 끝을 알수는 없지만 그 날이 올때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껴주며
언제나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그리하여 그날이 와도 사랑했음에 진정 후회없기를.....
조금 더 가까이 불러 본 지리산 천왕봉
보이지는 않지만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의 산행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겠지.
아아....저기는 또 언제 가 보나...
지리산에 꼭 와 보고 싶다는 한사람.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사람도 내 마음속에서는 즐거운 산행을 함께하고 있다.
눈속에 뭍인것 같은 것 같은 어설픈 연출을 하며...
그런데 티가 팍 나네...부끄부끄.
정말 시간 널널해서 좋다.
아직까지는 정말 아직까지는 강한 바람도 불지 않고 하늘도 보이고
마치 봄산행인듯 나뭇가지의 눈들도 살짝 녹아 내리려는듯 안스러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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