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부시럭부시럭
느낌상 아주아주 이른 새벽 시간임이 분명한데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산장안은 벌써 분주하다.
이 시간, 모른긴 몰라도 누군가는 벌써 산행을 시작했을테고 또 누군가는 아침밥을 먹고 있을거다.
그러나 우리의 오늘 일정은 아주 널널하다 못해 한가롭다.
뒤척이는 미소를 향해...
급할거 하나도 없으니깐 푹 더 자...
그렇게 꿀맛같은 잠을 좀 더 자고 일어나니 7시.
한가해진 산장에서 아침밥을 먹고 8시쯤에 소청을 향해 출발한다.
어제 함께했던 나의 무거운 배낭은 산장에 부탁해서 잘 맡겨놓고 소품같은 미소의 배낭에
꼭 필요한 물건들만 챙겨서 나서는 발걸음이 날아갈듯 가뿐하다.
산장 앞 급경사의 계단길이 초반부터 살짝 힘들게 한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가끔 내려오는 사람들만 보일뿐 올라가는 사람은 애기와 나, 단 둘뿐이다.
지난 어느겨울 폭설이후 나 홀로 대청을 오르던 얘기와 후배들과 거센 눈보라와 씨름하며 산행하던 얘기를 하며 즐겁다.
생각해 보니 설악동에서 대청을 오른건 겨울뿐이구나...
특히나 한겨울 양폭대피소 전 급경사 지역의 눈사태의 위험성과 희운각에서 소청까지 급경사를 네발로 기다시피 하며 오르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지금 오르는 이 길은 그때와 같은 그 길이지만 힘들다는 기분보다는 뭔가 그냥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하다.
미소에게...
지금 오르는 이 길이 한겨울에는 눈이 너무 많아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그 미끄러운 길을 피해서 네발이 눈에 푹푹 빠지면서 겨우겨우 올라간다고 해 줬더니...
웬지 잘 믿기지 않는듯한 표정이다.
뭐...멀지않은 그 어느날에 직접 경험을 해 보면 알겠지.
등산의 목적은 정상에 누가 빨리 오르기의 게임이 아니다.
그냥 여유없이 오로지 정상만을 향해 걸을때는 주변을 감상할 시간이 없다.
그러나 오늘은 아주 많은 시간속에 이렇게 한없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간에 나타나는 철계단을 오르니 발 아래로 그림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그냥 가면 섭하지...
홀로온듯 한 사람에게 부탁해서 증거자료 찰칵.
그 분도 사진한장 남겨 주고...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고...
이제는 각도를 달리해서 찰칵...
하여간 폼은..
자.....애기도 한장 남겨야지...찰칵.
왼쪽 뒤로는 내일 가야 할 공릉능선과 범봉이 눈에 들어 온다.
미소는...
산은 다 같은 산인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산이 있었다니 정말 놀랍다며 연신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면서 산에 오길 정말 잘 했다고...
그래, 그럼 이리와...흐아...
간혹 한두사람만이 지나갈뿐, 한적하고 여유로운 산행길이다.
가끔은 농담을 주고 받고 또 때로는 힘든 산행을 통해서 서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며
두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길을 설계도 해 본다.
때로는 힘들겠지만 그 고비를 참고 견디면 우리 앞에 그 몇배의 행복이 찾아 온다고...
그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과 미래를 설게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저 멀게만 느껴지던 소청에 큰 힘들이지 않고 아주 가뿐하게 도착한다.
소청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저 멀리 보이는 공릉능선과 용아릉을 조망하고 그리고 지금 가야 할 봉점암을 바라 본다.
봉정암에 이르는 길은 내리막임에도 왜 그런지 지치고 힘들다.
아마도 조금후면 다시 올라 올 길을 내려가기에 그런것 같다.
내리막이고 바로 눈 앞에 보여서 금방일거라고 생각했는데...흠...웬걸
귀여운 배낭을 애기가 가져가고 나니 저기 보이는 봉정암으로 한걸음에 갈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봉정암에 도착했는데 마침 공양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먼저 사리탑에 오르기로 한다.
봉정암 사리탑.
용아장성을 등반할때는 바로 몇걸음의 지척에 있으면서도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일부로 찾아왔다.
아니 미소가 신혼여행으로 설악산에 오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이곳 봉정암에 오고 싶어서였다.
사리탑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각렬한 태양에 아랑곳 하지않고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나와 미소도 삼배를 하고 짧게 나마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우리 두사람 언제나 서로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게 해 주세요"
네...꼭요...약속...
봉정암에서 바라 본 새롭게 건축중인 소청대피소
봉정암과 소청의 그 중간쯤.
이 소청대피소가 완성되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조망이 가장 멋있는 대피소가 될것 같다.
소청대피소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정말 환성적이다.
저 멀리 귀청에서부터 시작해서 용아릉과 공릉능선까지...
아......정말 끝내준다.
대피소가 완성되면 꼭 한번 오리라......무조건.
아니 조건이 있기는 있네...애기와 함께.
칼날같은 용아릉.
사리탑에서 짧은 기도를 드리고
사리탑 맞으편 또는 뒷편에 있는 아주 좋은 전망바위에 오른다.
헉...이렇게 전망이 좋고 편한 장소인데 왜 오르는 사람들이 한명도 없지...몰라.
그 언제인지 시간도 잘 기억이 안 나는 시절...
암튼 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디를 가는지도 잘 모르면서 둘째형님을 따라 용아릉에 오른적이 있었다.
개구멍바위와 뜀바위를 통과할때는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는지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고 쥐님도 오셨다 가고
한순간 방심하면 바로 추락하는 칼등같은 능선에서 생전처음 자일이라는 것도 해 보고 어찌나 짜릿하고 재미있었는지...
맞으편에서는 내일 가야 할 공릉능선이 우리를 반갑게 바라 보고 있다.
바로 밑, 사리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지만 우리가 있는 이곳에는 오직 우리 둘뿐이다.
그래서 좀 더 여유있게 설악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둘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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