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외국인이 손짓으로...이케이케...하면서 사진을 찍어주느냐는 흉내를 낸다.
고맙지만 이미 설치가 끝났기에...
사진을 찍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조금 더 걸으니 드디어 코앞에 윗세오름대피소가 보인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대피소에 도착한다.
배고프다...우리도 밥 먹자.
다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대피소에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대부분이 가까운 영실코스에서 가볍게 오른 사람들인것 같다.
차림새나 신발을 봐도 등산이라기 보다는 그냥 편하게 뒷동산의 약수터에 가는 듯 한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점심을 먹는 모습들을 보니 도시락이나 뭐 이런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1500원짜리 컵라면을 먹고 있다.
하긴 뭐, 그냥 가볍게 왔던 길을 뒤 돌아서 갈거라면 그 정도도 괜찮겠지.
나와 미소는 아주아주 정성스럽게 준비한 햇반과 찌게 그리고 반찬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면 너무너무 부러워할 점심을 먹는다.
맛난 점심을 먹고 12시35분쯤에 다시 산행시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왔던 그 길, 영실이나 어리목으로 원점회귀를 하기 때문에 돈내코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없다.
그러기에 미소와 나, 단 둘이서 한라산의 또 다른 모습을 보러 행복의 길로 가는 중이다.
가까이에서 바라 본 서북벽.
지난번에는 휘볼아치는 눈보라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좋은 날씨 덕분에 이렇게 선명하고 확실하게 볼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카메라를 설치하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에 틈만 나면 사진을 찍으며 여유있는 산행을 한다.
지나 온 길의 초원을 배경으로...
저 산 능선 넘어에 대피소가...
좋지...애기야.
아아...바로 여기다.
지난 겨울 내리는 눈과 휘몰아치는 바람과 그 깊이를 알수없을 만큼 쌓인 눈 때문에 고생을 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그 곳이.
돈내코에서 출발해서 저기 보이는 저 빨간리본을 통과할때만 해도 그렇데로 견딜만하고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에야 데크가 있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데크가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다.
왜냐하면
저 데크는 아예 상상도 못 하고 데크의 기둥 위에 있는 밧줄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하나...
암튼 길을 찾겠다는 생각에 절대 믿지 못하겠지만 허리까지 빠진 눈속에서 또 그 허리만큼 더 파 내려갔을때 그때서야 저 밧줄이 보였으니깐 말이다.
그때 조금 더 방황을 하면서 눈속에서 길을 잃었다면...아아아.
생각도 하기 싫지만...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온통 백색의 공포 그 자체였다.
그때 만약에 무리하게 진행을 했으면 지금 이 순간 미소와 함께 이 자리에 없을수도...안돼.
무리하게 진행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진정한 용기는 과감하게 포기할줄도 버릴줄도 알아야 하는 것...
그때는 약 200여미터만 더 가면 대피소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직접 확인을 해 보니 나의 너무나 큰 착각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같이 와서 너무너무 고생을 많이 한 후배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보라속에 바로 앞에 있는 사람도 볼 수 없었던 그 길을 오늘은 한라산을 코앞에서 보면서 아주 즐겁게 걷는다.
미소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이 길을 걸으며 지난 겨울 산행을 생각하면서 혼자서 괜히 웃기도 하며 추억에 잠겨본다.
어디쯤에서 후배가 뒤 돌아 가자고 했고 어띠쯤에서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왔으며 어디쯤에서 나도 망설였는지를...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냥 웃음만 나 온다.
방아오름약수에서.
이 돈내코 코스는 여름철에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지 한가하다.
윗세오름대피소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이쪽으로 왔던 사람들도 저 위에서 모두 다 돌아가고 진짜 우리 둘뿐이다.
남벽을 조금 더 당겨서...
용암이 흘러 내리다가 어케 저 정상주변에만 절벽을 만들었을까 생각하면 신기하다.
절벽 중간중간에 굴 같은 것도 있는데 실제로 보면 볼 수록 더 멋있고 자연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다울뿐이다.
저 동굴에 앉아서 요가수련을 하고 있는 미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등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풍령(빼재)에서 부항령(삼도봉터널)까지 - 1 (0) | 2012.09.24 |
|---|---|
| 제주여행3 - 한라산 등반3 (0) | 2012.07.13 |
| 제주여행3 - 한라산 등반 1 (0) | 2012.07.13 |
| 설악산 셋째날 - (2) (0) | 2012.06.14 |
| 설악산 셋째날 (1) - 희운각대피소 -> 공릉능선 -> 소공원 (0) | 2012.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