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벽 분기점을 가기전인 작은 다리위에서...
그때 여기에서 부터가 진짜 고생의 시작이였는데...
아니 사투였다고나 할까...
남벽분기점에 있는 안내판.
이 그림을 보니 왠지 철쭉이 필때 또 오고 싶네.
뒤로 보이는 우측 사면으로 성판악에서 한라산 정상인 분화구로 오르는 길이 살짝 보인다.
이렇게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겨울에 눈보라가 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었겠지.
방향을 가늠하지도 못 하고 오로지 빨간 깃발과 밧줄만 바라보면서...
산행인지 극기훈련인지...
이제 한라산 정상은 눈에서 점점 멀어지는데 정상부근에서 부터 갑자기 아주 듣기 싫은 요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멧돼지 울음소리인지 들개의 울음소리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그 소리가 아주 기분 나쁘다.
뭔지 모르지만 설마 여기까지 내려오진 않겠지.
여기는 어디.
평퀘대피고 가기전에 있는 무슨 전망대...
저 멀리 희미하게 서귀포방면으로 지귀도와 숲섬 그리고 문섬인지 새섬이 보이는 곳이다.
얼마 후 대피소라고 하기엔 뭔가 많이 부족하고 어설픈 평퀘대피소가 나오고 이제부터 길과 풍경은 완전 딴 세상으로 변한다.
탁트인 초원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나무들이 빽빽한 밀림지대로 바뀌는 거다.
걸어도 걸어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기에 언제부터인지 미소의 얼굴 표정이 변하기 시작한다.
어딘지 모르게 길은 습하고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왜... 안 그렇겠어.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지, 이 긴 길은 언제 끝이 나올지 모르지,
주변은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이지 여차하면 금방이라도 뭔가 튀어 나올 것 같지...
등산로에는 나름 생각해서 돌을 깔아 놨는데 지금은 그 돌들이 걷기 불편하고 힘들게 만들고...
조금만 참아...애기야.
대신 오늘은 이슬 세방울이다.
아싸...
그래...그럼 빨리 가자.
지난 겨울에는 나무가지가지 마다 쌓인 눈 때문에 마치 동화의 나라속에 들어온것 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이였는데.
미소의 표현에 의하면 너무나 지루한 길이 끝나고 돈내코입구를 코앞에 두고서.
설악산의 대청봉에서 오색으로 내려가는 길과
지리산의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내려가는 길
그리고 오늘 내려 온 한라산의 남벽분기점에서 돈내코입구의 이 길.
이 세 구간은 미소는 두번 다시는 산행을 안 하겠단다.
지루하고 힘들고 볼 건 없고...
그래. 알았어...
내일은 백록담 보러 가자.
잠시 후 그 지루한 길이 끝나고 돈내코입구에 도착하니 5시10분정도.
어리목에서 9시10분정도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오늘 산행시간은 약 14km의 거리에 총 8시간.
놀며 쉬며 사진 찍으며 생각보다 많이 안 걸렸네.
아까보다 기분이 많이 좋아진 미소를 보니 또 다시 그냥 웃음이 나 온다.
애기야...진짜 고생 많았어.
빨리 가서 맛난찌게 하고 저녁 먹자.
관리실에 물어 보니 제주로 나가는 버스는 이미 끝났고 지금 서귀포로 가는 버스가 있으니 빨리 내려간다.
빨리는 무슨 빨리...
처음 생각처럼 그냥 택시를 타고 어리목으로 가자.
35000원 달라는 택시비를 가진게 이것밖에 없다고 해서 30000원에 어리목으로 다시 돌아온다.
선하게 생기신 제주토박이 택시기사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여기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은 정작 제주도가 정말 좋은 곳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고...
충분히 이해할만한 사실이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어쩌다 여행을 와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즐기다 가면 그만이지만
여기 제주도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은 고향이 지겨울 수도 있으리라...
어리목에서 다시 차를 끌고 시내의 무슨마트에서 저녁 반찬을 사고 오늘은 관음사 야영장으로..
할말이 참으로 많은 관음사야영장에서의 하룻밤이였다.
관음사야영장에 도착하니 두동의 텐트가 보인다.
우리도 서둘러 텐트를 설치하고 맛있는 찌게와 함께 한잔술을 하기 시작하는데...
어느순간 텐트 한동이 사라지고 나머지 텐트는 사람의 인기척도 없고...
이때부터 시작된 미소와 나 둘만의 토크쑈.
아마 동영상을 찍어 놨으면 두고두고 보면서 배꼽 빠지게 웃고 또 웃으리라.
일기예보의 비는 오로지 핑계요 단 한가지 이유는 어제처럼 다른 사람은 한사람도 없이 딸랑 우리만 텐트을 치고 자는 게 무서워서...ㅎㅎㅎ
잘 것처럼 하다가 가는 아주나쁜 사람에게는....이렇쿵저렇쿵 궁시렁궁시렁 막 뭐라뭐라 해주고
그리고 밤깊은 시간에 텐트를 치러 오는 착한 사람에게는...뭐든지 다 해 주고 싶고 마음 같아서는 앞에 가서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암튼 그 수없이 주고받은 많은 말들을 다 어떻게 표현을 하랴...
지금 글을 쓰면서도 입가에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 나온다.
텐트를 걷고 이동을 하느니 뭐니 하다가 결국 그 착한 사람들 덕분에 아주 마음 편하게 세방울의 이슬을 마시고 텐트속으로 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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