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이야기

한벗샘에서 자빠지다 - 1

산빛사랑 2013. 1. 21. 11:51

2013년 신년 산행은 지리산이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만 대충하고 아직 해도 떠오르기 전인 5시30분경에 집을 떠나 지리산을 향해 출발한다.

이번 코스는 청학동에서 거림까지 아주 짧게 잡았다.

욕심 같아서는 청학동에서 세석까지 올랐다가 거림으로 내려오고 싶지만 괜한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한다.

 

덕유산 부근을 지나갈 무렵 옆에서 잠들었던 미소가 눈을  뜨고 하얀 눈으로 곱게 옷을 입을 산을 보더니 탄성을 지른다.

너무너무 아름답고 황홀하다고...

 

부산의 후배가 거림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온다.

곧이어 나도 거림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보는 후배 와이프와도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고  차량 한대는 여기에 잘 모셔두고 이제 산행 출발지인 청학동으로 간다.

그리고 산행을 하기전에 청학동에 미리 예약해 놓은 펜션을 둘러 보고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삼신봉에 입구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등산을 안 하는 후배 와이프는 얼라와 펜션으로 돌아가고 우리 세명은 봄날같은 따스함을 느끼며 겨울산행 같지 않은 겨울 산행을 준비한다.

날씨만 좋으면 정말 그 어떤 병풍 보다도 아름답고 황홀한 지리의 주능선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지리산에서 지금까지 딱 한번 보았던 저 멀리 푸른 남해 바다와 사천의 연륙교도 볼 수 있겠지...

도인촌 입구에서...

입구에서 언덕길만 돌아가면 바로 도인촌.

요기는 내일...가 봐야지...

약 10여년전에 갔을때 하고 어떻게 변했을까...

아니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더 좋을텐데...

 

10시 30분...

이제 산행시작이다.

뭐...오늘은 간단 산행이니깐 부담도 없고 날씨도 따뜻해서 마음도 한결 여유롭다.

 

그런데 웬일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렵다...거..신기하네.

거림에서는 대형버스와 승용차로 온 사람들이 북적북적 거리며 산행 준비를 하고 있는걸 보고 왔는데.

그래서 청학동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꽤나 많으리라 예상을 하고 왔는데, 웬걸 아주 한적하고 조용하고 정말 좋다.

초입에서 삼신봉 정상까지는 2.5km 시간으로는 1시간 30분 정도.

줄을 서서 산행을 하게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사람들이 없어서 처음부터 우리 세명뿐이다.

음...딱 좋아라 하는 산행이다.

 

이렇게 산행을 하면 참으로 좋다.

사람들이 많으면 그냥 스쳐 지날 갈 풍경들도 이렇게 느릿느릿 걸으며 주변의 경치를 맘것 즐기며 여유롭게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무심의 마음으로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라도 나면 그냥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산행에서의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그냥 그렇게 중간중간 쉬면서 서로의 살아가는 얘기도 하고 지난날을 회상하기도 하면서 때묻지 않은 자연속에서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주고 받는 서로의 대화속에 서로의 따뜻한 정과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따땃한 햇살은 좋은데 등로에 눈이 없다는 거...

눈속에 푹푹 빠져도 좋은데...흠.

사람들이 많이 다닌 탓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등로가 남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쉬엄쉬엄 걷고 있는데 조용하던 산중에 갑자기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거리는 멀지만 무척 소란스러운듯한 느낌이다.

얼마 후..

그 소리의 정체는 내삼신봉에서 들려오는 것이였다.

멀리서 보니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휴식을 하면서 아마도 주변 경치에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것이라 생각된다.

 

잠시 후...그리 힘들지 않게 안부에 도착하니 지리산의 정상 천왕봉이 수줍은듯 나무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그래...바로 이거야...정상에서는 막힘없는 조망으로 지리의 주능선을 한 눈에 볼 수 있겠지...

 

지금까지의 산행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인 노부부(?)가 올라 오기에 자리를 양보하고 이제 500m 앞에 있는 삼신봉 정상을 향해...

아...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까...

아니 그 무슨 말로 표현을 한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이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으리라...

벅찬감동...무아지경...황홀...환희...

암튼...뭐라 표현할 수 없이 그냥 한없이 좋다.

 

저 그림같은 12폭의 병풍...

지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느낄수는 있다.

저 그림같은 풍경속에는 노래하는 새들과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눈꽃을 피운 나무들속에

부부가 단둘이 사랑을 속삭이며

연인이 서로의 미래를 약속하며

가족이 모두의 건강을 위하며

친구와 변치않는 우정을 맹세하며

지금 이 시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우측에 우뚝솟은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서 촛대봉을 지나 반야봉으로 향하는 지리산 주능을 한눈에...

촛대봉에서 저 멀리 반야봉까지...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지리산 주능을 한눈에 보고 있는데...그런데

동쪽인 천왕봉은 맑게 빛나는데 서쪽의 반야봉은 옅은 구름에 그 정상만을 살짝 보여준다.

 

아...그러고 보니 반야봉에서 천왕봉 사이의 지리산 주능에 올라 본 기억도 가물가물 하구나...

미소도 천왕봉에 꼭 가고 싶어 하는데...

내 욕심에 지금처럼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게만 하고 있구나...

 

그래도 날씨가 좋아서 이렇게 멀리서라도 볼 수 있는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기쁘고 고맙다.

반야봉은 옅은 연무에 그 정상만 살짝 보이고 그 아래 노고단은 희미하게 아른거린다.

 

후배왈...

지난번 반야봉에 묻어 두웠던 이슬이가 그 다음에 가 봤더니 감쪽같이 없어졌다고...

음....반야봉 일몰을 언제볼 수 있을런지...

그리고 묘향대와 이끼폭포는 또 언제...

여기 삼신봉에서 저 멀리 주능 안부 세석산장까지의 남부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옛날...

새벽에 쌍계사에서 출발해서 삼신봉을 지나고 세석을 거쳐 어둠이 내린 시간에 장터목까지 생각없이 갔던 기억이...

그때는 그래도 지금보다 젊어서 그랬는지 힘든 기억도 없는데...

아마 지금 그렇게 하라면 안 한다.

 

후배왈...

악양에서 실상사까지 남북종주를...

지금은 그냥 서로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