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이야기

한벗샘에서 자빠지다 - 2

산빛사랑 2013. 1. 21. 11:54

 

여기까지는 봄날같은 산행을 했지만 삼신봉 정상은 차가운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바람은 차갑지만 그래도 좋다.

미소와 함께 막힘없이 펼쳐진 지리산 주능을 한눈에 볼 수 있으니...

 

아무도 없던 정상에 아까의 그 노부부(?)가 올라 와 이번에도 양보을 한다.

뭐 사실은 양보라기 보다 이제 갈 시간이 됐다.

그 노부부는 아주 초간단으로 시산제를 지내려는지 막걸리와 과일을 펼쳐 놓는다.

 

자...이제 우리는 저 뒤로 보이는 한벗샘을 향해서...

그리고 뭐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혹시 빨리 가면 음양수샘까지....꿈 깨.

요건 하동 쇠통바위라고...

 

처음 계획은 삼신봉 - 상불재 - 삼성궁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웬지 조금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코스는 이 다음 어느날에...

 

삼신봉에서 세석으로 가는 길에도 발자국만 있을 뿐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완만한 능선 길이라서 걷기가 아주 좋다.

그렇지만 가끔씩 나오는 내리막 길에서 미소가 미끄럽다며 어링광 아닌 어리광을 피우는 모습이 이쁘다...

그리고 지리산이 너무나 마음에 든단다.

웬지 마음이 포근한게 자기도 모르지만 뭔가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고...

 

음...마음의 안식처랄까...

그러면서 나이들면 바로 여기 지리산에 와서 살면 좋겠다고...

 

( 이 글을 쓰기 얼마전에 통화를 했는데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일로....)

예전에는 이 길이 산죽으로 터널을 이루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등로가 시원하게 잘 뚫여있다.

 

한적한 길을 걷다 후배가 미리 잡아놓은 곳에서 맛난 식사를 한다.

요즘 메뉴는 항상 똑 같다...뭐 다른걸 한번 생각 해 보던지 해야지...

식사중에 오늘 산행중 세번째 보는 사람이 나 홀로 산행을 하며 씩씩하게 지나간다.

 

저 멀리 능선을 바라보며 그 어디쯤에 한벗샘이 있을까...가늠해 본다.

요기 이 능선 넘어...아니면 저 능선 넘어...

 

웃으면 걷다보니 어느덧 오늘의 하산 지점인 한벗샘에 도착한다.

아니지....음양수까지 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 하산을 하는거지...

 

그래...여기에서 자빠지자...

이정표가 있는 한벗샘에서 내려가야 할 길...자빠진골이라...

누가 자빠졌는지 아니면 뭐가 자빠졌는지 몰라도 이름한번 독특하다...

후배는 이 길을 가려고 10년을 기다렸다나 뭐라나...

 

세명 모두 지금부터는 새로운 길로 발길을 옮기며 또 다른 약간의 모험을 시작한다.

길은 제대로 나 있을지...러셀 상태는 어떨지...

생각보다 길의 상태가 훨씬 양호하다.

등산로도 확실하고 사람들의 발자국도 많이 보이며 러셀도 필요없다.

하지만 눈에 발이 빠지는건 예상했던 일...

 

초입을 벗어나자 마자 등산화에 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바로 스패츠를 착용하고 이제부터는 그럴 염려없이 아주 마음 편하게 걷는다.

안 빠져도 되는데 괜히 여기저기 푹푹 빠지면서...

처음에는 양호하던 길이 어느순간 없어지더니 이건 뭐 길이 아닌것도 아니고...길인것도 아니고...

중간중간 길이 없었졌다 다시 나타나고...

뭐 길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냥 계곡따라 치고 내려간다고 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중간중간 나타나는 고로쇠 채취용 호수도 넘으며...

 

그러나 다행히 중간중간 리본이 아주 많이 달려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길도 뚜렷하지 않고 바위에 눈까지 덮혀서 위험한 계곡길을 넘어지지도 않고 아주 잘 따라온다.

말은 안 하지만 사실 이렇게 잘 따라주는 미소가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미소가 내게서 조금만 멀어져도 나는 그 자리에서 발길을 멈춘다.

그렇게 한두번...세번...네번...

그 사이에 후배는 저 만치 앞서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소와 발을 맞추며 오손도손 아무도 없는 눈덮힌 산속을 걷는 기분이 참으로 좋다.

 한벗샘에서 출발해서 약 1시간 30여분에 후에 거림골 본류에 도착한다.

 

이제 이걸로 오늘 산행은 거의 끝났으니깐 여기에서 띵까띵까 계곡 풍경을 보며 한참을 보낸다.

여기에서 후배는 펜션에 있는 와이프에게 전화을 걸어 본격적으로 음식 준비를 시키고...

 

거림에 도착하니 4시50분.

산행을 종료하고 차을 몰고 펜션에 도착하니깐 후배 와이프가 맛있는 요리를 하며 기다리고 있다...

 

배는 고프고

침 꼴깍

으음.